샤오미 10년 돌아보기
2020년 4월 6일은 샤오미 설립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 레이쥔은 자신의 웨이보에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년 전 북경 인구 빌딩(银谷大厦)에 둥지를 튼 이 작은 회사가 현재 글로벌 휴대폰 시장 점유율 Top 4, 가장 젊은 500대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를거라곤 아무도 상상치 못했다.
샤오미의 모든 스토리는 한 그릇의 좁쌀죽에서 시작한다.
1. 설립
2010년 4월 6일, 북경 인구 빌딩(银谷大厦). 같은 꿈을 가진 열댓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좁쌀죽을 먹고 있다. 샤오미(小米)의 원래 뜻이 좁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사용하던 전기밥솥엔 아직 미홈(米家) 로고가 새겨져 있진 않았다. 이렇게 샤오미의 역사는 시작된다.
절반 가격에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만들겠다던 샤오미. 이 작은 회사가 현재 수억 명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매김 하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샤오미가 대중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아마 8월 6일일 것이다. 안드로이드 기반 커스텀 롬인 MIUI의 첫 클로즈 베타 버전을 내놓은 날이다.
2. MIUI
샤오미의 첫 제품인 MIUI 베타 버전은 공개 당시 큰 파문을 일으키진 못했다. 고작 100명의 스폰서가 다였다.
당시 MIUI는 안드로이드의 앱 서랍을 과감히 버리고 스큐어모피즘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스큐어모피즘은 실제 사물을 그래픽으로 비슷하게 구현하는 걸 의미한다. 당시의 iOS도 이 스큐어모피즘을 표방했다. iOS와 안드로이드의 장단점을 잘 버무려 만든 MIUI는 중국산 맞춤형 운영체제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2010년 10월 29일, MIUI 두번째 버전을 발표한다. MIUI 2에선 잠금 화면 슬라이드 언락/전화 수신 기능을 선보인다. 비록 UI 디자인의 많은 부분이 HTC Sense와 유사했지만 MIUI의 실용적인 기능, 미려한 디자인/애니메이션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한다.
3. 샤오미 Mi 1
2011년 8월 16일은 샤오미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다. 레이쥔(雷军) 회장 개인으로서도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MIUI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자, 샤오미의 첫 스마트폰을 공개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샤오미는 북경 798 예술구에서 Mi 1 스마트폰 발표회와 MIUI 1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샤오미의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당시 샤오미는 하드웨어 설계 경험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휴대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위해 샤프(Sharp) 같은 기업을 분주히 오가며 수개월을 고군분투했다.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에 업계를 뒤흔들 만한 휴대폰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발표회 당시 공개한 1999(위안) 숫자는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37시간, 40만 대, 8억(위안). 이날부터 휴대폰 시장에 "샤오미"란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됐다. Born for You, Burn for MI(为发烧而生)라는 슬로건과 극강의 가성비로 주목받으며 Mi 1 휴대폰은 대성공을 거둔다. 이전까지 이런 품절 대란은 애플(Apple)과 메이주(Meizu)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때 루웨이빙(현 샤오미 부총재, 卢伟冰)은 아직 Gionee(심천에 본사를 둔 스마트폰 기업, 현재는 파산했다)에 근무했었고 많은 제조업체들은 샤오미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어느 누구도 이 샤오미란 회사가 미래의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들의 머리맡 위에 올라서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4. 홍미(Redmi)
2013년 7월 31일, 홍미 스마트폰과 QQ Zone이 연합하여 1000위안대 휴대폰 시장 진입을 선포한다. 799위안의 저렴한 가격에 매료된 900만 소비자들은 QQ Zone을 통해 사전예약을 진행했다.
이후에도 홍미는 지속적인 가성비 전략을 구사하며 시장을 점령해 나간다. "항상 아름다운 일이 생길 거라 믿어요(永远相信美好事情即将发生)"라는 슬로건으로 더 나은 가성비 휴대폰을 꾸준히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홍미 브랜드는 다양한 가격대의 가성비 제품을 출시하여 샤오미 Mi 라인업에 부재했던 가격대 공백을 메웠다.
2013년 8월 23일, 샤오미는 신규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0억 달러를 넘어선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뒤를 잇는 중국의 4대 인터넷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5. 샤오미 TV
2013년 9월 5일, 샤오미 TV가 공식 발표됐다. "젊은 사람들의 첫 TV"라는 슬로건으로 스마트티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마트티비 역시 샤오미 특유의 가성비 전략으로 기존 TV 시장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현재(2020년)까지 7년의 발전을 거듭한 샤오미 TV는 중국 시장에선 처음으로 출하량 1000만 대의 TV 브랜드라는 쾌거를 이룬다. 중국은 물론 인도 시장에서도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6. 샤오미 생태계
2013년 말, 샤오미는 자신만의 "생태계" 구축이라는 또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다. "돼지도 태풍을 만나면 날 수 있다(只要站在风口猪也能飞起来)"는 유명한 말을 남긴 레이쥔은 이때가 바로 태풍의 길목이라 생각한 것이다. 레이쥔 회장은 앞으로 5년간 100여 개 회사에 투자한다는 목표를 세운다.
3년 뒤인 2016년, 샤오미는 이미 77개의 기업에 투자하여 거대한 생태계를 꾸리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모두 급속도로 성장했으며 매출액은 100억 위안을 웃돌았다. 그중 ZMI(紫米), HUAMI(华米), 1more(万魔), 스마트미(智米) 성적이 돋보였다. 매출액 10억 위안을 넘긴 "유니콘" 기업도 있었다.
HUAMI는 샤오미 미 밴드의 빠른 성장에 힘입어 2년째엔 매출액 10억 위안을 넘어선다. AMAZFIT이라는 자체 브랜드 구축은 물론 샤오미 보다 먼저 뉴욕 나스닥에 상장했다.
2016년 3월 29일, 레이쥔은 스마트홈 브랜드인 "미홈(米家)"을 공개한다. 미홈은 샤오미 생태계의 가장 핵심이자 샤오미 공급망에 있는 제품을 전담하는 통합 브랜드다. 샤오미가 시장을 세분화하고 공급망 제품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중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재 샤오미 생태계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브랜드가 바로 미홈이기도 하다.
미려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미홈은 조금씩 우리 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현재의 미홈은 다양한 세부 영역에 구석구석 포진하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IoT 플랫폼이 됐다.
7. Mi Pad, 중국 1위
2014년 5월 15일, 샤오미의 첫 태블릿 모델인 Mi Pad를 공개했다. 이 제품 역시 극강의 가성비를 갖추며 당시 애플의 iPad가 독식하고 있던 태블릿 시장에서 새로운 출구를 모색한다. 하지만 아무리 iOS/안드로이드의 장단점을 버무린 MIUI지만 태블릿 생태계에선 역부족이었다. 샤오미 미 패드는 2018년 마지막 제품을 공개한 뒤 아직까지 신제품이 없는 상태다.
현재 안드로이드 진영의 태블릿은 낮은 판매량, 빈약한 생태계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유명 앱 개발사가 태블릿을 지원하거나 혹은 폴더블 스마트폰이 더욱 성숙해지면 봄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샤오미가 아직 태블릿 시장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4년 10월 30일, 샤오미는 레노버/LG를 추월한다. 삼성과 애플에 이은 세계 3대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부상한 것이다. 2014년 샤오미는 6112만 대를 출하하며 중국에서 1위를 달성한다. 샤오미를 창업한 지 4년 만에 일궈낸 기록이다.
8. 글로벌 진출
2014년 7월, 샤오미는 자사의 첫 해외 거점을 인도 시장으로 선택한다. 같은 해 8월엔 인도네시아 시장도 진출하며 세계를 향한 날개짓을 시작했다.
그 후 몇 년간의 꾸준한 해외시장 공략으로 인도,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미얀마, 이스라엘 등 국가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다. 2018년부턴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필두로 유럽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비록 중저가 시장 위주이지만 글로벌 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만의 지위를 갖게 됐다.
9. 샤오미 Note
2015년 1월 15일, 샤오미의 플래그십 모델인 Mi Note를 공식 발표 한다. 기존 중저가 라인을 벗어나 고급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첫 시도였다. 샤오미 노트는 최고 사양 2999위안으로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샤오미 노트에 탑재한 퀄컴 스냅드래곤 810 프로세서는 심각한 발열 문제가 존재했다. 우수한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노트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여성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출시한 핑크 컬러의 "여신 에디션(女神版)" 역시 발열 이슈와 겹쳐 참패한다. 샤오미 노트는 많은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며 기업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힌다. 고급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실패한 것이다.
2016년 10월 25일, 샤오미는 곡면 스크린을 채택한 노트2를 야심 차게 출시했지만 Mi MIX의 인기에 밀려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결국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샤오미 노트2는 단명하고 만다.
2017년 9월 11일, 북경 공업대학 올림픽 체육관에서 차기작인 샤오미 노트 3을 발표한다.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EXO 크리스(우이판, 吴亦凡)를 홍보모델로 내세웠다. 하지만 샤오미의 혼란스러운 라인업 구성으로 노트 3과 Mi 6은 경쟁구도로 들어선다. 이 경쟁구도는 샤오미 프리미엄 라인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고, 가격대에 걸맞지 않은 프로세서 등을 탑재하여 노트 3은 실패작으로 막을 내린다.
10. 샤오미 Max
2016년 5월 10일, 샤오미는 MIUI 8과 새로운 라인업인 Mi Max를 공개한다. 대형 스크린과 대용량 배터리를 무기로 중급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18년 7월 19일, Max 시리즈의 3번째 버전인 Mi Max3을 공개했다. 여전히 대형 스크린과 대용량 배터리를 내세웠지만, 스냅드래곤 660 프로세서를 탑재한 Mi 6X(Mi A2)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약 19% 뒤쳐진 성능을 가진 스냅드래곤 636을 탑재한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샀고 판매량 또한 저조했다. 결국 Mi Max 3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새로운 Max는 없었다.
11. 샤오미 MIX
2016년 10월 25일 출시한 샤오미 Mi MIX는 새롭게 디자인한 전면 스크린 제품으로 샤오미 휴대폰 라인업 중에서도 특히 두각을 나타낸다. 91.3%의 화면 비율로 당시 중국에서 출시한 다른 스마트폰보다 월등했다. 후면 샤오미 로고를 없애고 전면엔 물리 버튼을 빼는 과감한 디자인으로 일명 미펀(米粉)이라 불리는 샤오미 열성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고급 스마트폰 시장으로 성큼 다가간 것이다.
2017년 9월 11일, MIX의 후속작 MIX 2 공개. 스마트폰 외부의 모든 부분을 세라믹 소재로 만든 프리미엄 옵션도 새롭게 추가됐다.
2018년 3월 27일, Mi MIX 2s 공개. 샤오미는 이때부터 휴대폰 카메라 영역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카메라 성능을 평가하는 전문 사이트 DxOMark에서 Mobile Photo 부문 101점을 받아 iPhone X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현재 Mi MIX는 핀란드 디자인 뮤지엄 등 세계 유명 박물관에 영구 소장된 상태다. 비록 MIX 3과 MIX Alpha가 기대만큼 큰 호응을 얻진 못했지만, 2020년 제품군을 새롭게 재정비하며 야심 차게 준비 중인 MIX 4가 내심 기대된다.
12. 자체 개발 프로세서
2017년 2월 28일, 샤오미는 "내 마음의 거센 물결(我心澎湃)"이란 주제로 발표회를 열어 자체 개발 프로세서인 펑파이 S1을 공개했다.
샤오미가 독자적으로 연구 개발한 첫 프로세서로 삼성(Samsung), 애플(Apple), 화웨이(华为)에 이어 단말기 칩 R&D 및 제조 능력을 동시에 갖춘 4번째 휴대폰 제조업체로 거듭난다. 같은 날 발표한 샤오미 Mi 5C에 이 펑파이 S1 프로세서가 탑재됐다. 비록 비교적 낙후한 28 나노 공정이지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샤오미에 있어 십분 중요한 날이었다.
13. 침체기
2016년 2월 24일, 샤오미 Mi 5가 공개됐다. 당시 여러 스마트폰 라인업의 부진으로 샤오미는 이 제품에 사활을 건 상황이었다. 하지만 Mi 5에 탑재된 스냅드래곤 820의 심각한 발열 문제는 자칫 샤오미까지 태워버릴 정도의 부정적인 여론으로 번(Burn)졌다. Burn for You, Burn for MI(为发烧而生)라는 샤오미 슬로건은 이 발열 이슈로 인해 웃지 못할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2015~2016년의 샤오미는 과거 빛나는 업적을 뒤로한 채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화웨이가 무섭게 추격 중이었고, TCL과 OV(오포/비포)가 그 뒤를 이으며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 4강 구도가 형성된다. (보고서 출처)
2015년 말, 공개석상에서의 레이쥔은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는 8000만 대 판매 목표를 세우며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운영 관리 세분화, 브랜드 구축, 그리고 핵심 기술에 대한 보충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보충수업"은 그간 샤오미가 자주 언급했던 단어다. 5년간의 고속 성장은 당연히 다양한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이 부작용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2016년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 상태였다. 게다가 중국 내 여러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샤오미를 목표로 집중 포격하던 시기였다. 결국 1분기 샤오미의 저조한 판매량으로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당시 중국은 인터넷 산업의 황금기를 막 지나선 때였다. 하드웨어 연구개발에 모든 전력을 쏟는 화웨이와 오프라인 리테일 전략에 집중했던 OV(오포/비보)가 선전하고 있었다. 마케팅과 가성비에 초점을 두고 "보충수업"까지 필요했던 샤오미는 창업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다.
킹소프트의 수장이기도 했던 레이쥔은 비즈니스 감각이 매우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돼지도 태풍을 만나면 날 수 있다"는 말을 남긴 레이쥔이지만,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의 레이쥔과 샤오미는 방향을 잃고 만다.
이렇게 샤오미는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샤오미의 가장 큰 약점은 차별화 전략의 부재였다. 당시 화웨이는 라이카(LEICA, 徕卡) 이름이 각인된 카메라를 선보였고, OV는 급속 충전과 사진 촬영 기능을 내세웠다. 이와 달리 별다른 특징이 없던 샤오미는 여전히 가성비 노선을 걷고 있었다. 이 때문에 레이쥔은 "보충수업"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다.
2016년 5월 18일, 샤오미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레이쥔 회장이 직접 공급망을 관리했다. 이때부터 오프라인 채널도 확장하기 시작한다. 2020년 현재 샤오미의 집(小米之家)이라 불리는 리테일 매장은 1000여 곳에 이른다. 리테일 전략은 린빈(林斌) 샤오미 공동 창업자가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2017년 7월 7일 샤오미가 공개한 2분기 실적은 모두를 놀라게 한다. 전분기 대비 70% 급증한 2316만대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샤오미 역사상 가장 높은 분기별 출하량이었다. 2년의 조직 개편을 거친 샤오미는 다시 고속 성장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샤오미 내부적으로 아직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여전히 가성비 전략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제품 라인업 간 모호한 포지셔닝으로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끼리 경쟁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결국 샤오미 Note와 Max 라인이 겹쳤고 비교적 고급 라인인 MIX 3 역시 가성비 폰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다. 샤오미의 프리미엄 라인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각 라인업의 포지셔닝 역시 보완해야 될 점이 많았다.
2018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 후부터 샤오미는 "안정"을 최우선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인지 샤오미 Mi 8은 디자인 문제로, Mi MIX 3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샤오미가 설립 초기 추구해온 저가, 가성비 전략이 오히려 샤오미 혁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2017~2019년 출시한 샤오미 스마트폰은 라인업 간의 모호한 경계로 "팀킬"을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리미엄 시장을 향한 샤오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14. 홍콩 증시 상장
2018년 6월 7일, 샤오미 레이쥔 회장은 홍콩 증권거래소의 거대한 징을 치며 정식 상장을 알렸다(홍콩거래소의 상장 기념식은 징을 치는 전통이 있다). 레이쥔은 이날 격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샤오미가 탄생한 첫날부터 우리의 혈관 속엔 혁신의 피가 흘렀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고된 노력 없는 혁신은 없으며, 좌절을 겪지 않은 혁신도 없습니다. 오해나 비판을 견디지 못한 혁신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 날들을 이해하기에 더욱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2019년, 샤오미는 "샤오미 테크놀로지 파크(小米科技园)"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총 50억 위안을 들여 건설한 신사옥은 16000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총면적은 34.8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15. 신전략
2018년 11월 19일, 샤오미는 뷰티 셀카 앱으로 유명한 메이투(Meitu)와 전략적 제휴 협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샤오미는 메이투 산하의 휴대폰 브랜드, 이미징 기술과 2차 도메인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획득한다. 메이투 스마트폰의 연구개발, 생산, 판매 및 홍보는 샤오미가 담당하고, 이미징 기술과 뷰티 카메라 알고리즘은 메이투가 제공했다. 또한, 샤오미는 메이투 브랜드가 보유한 스마트 하드웨어 제품의 생산과 마케팅에 대한 라이선스를 확보한다.
2019년 1월 10일, 샤오미 홍미 Note 7이 공개됐다. 이날 샤오미는 발표회장에서 홍미(Redme) 브랜드의 독립을 선포한다. 샤오미 부총재인 루웨이빙(卢伟冰)이 홍미 브랜드의 총괄을 맡게 된다.
메이투와 제휴를 맺은 뒤인 2019년 7월 2일, 샤오미의 새로운 라인업인 CC9를 발표한다. 이날 메이투 커스텀 에디션도 함께 공개됐다. 메이투의 이미지 처리 기술이 적용된 커스텀 에디션은 셀피에 특화된 스마트폰으로 여성 소비자를 겨냥했다.
2019년 11월 5일 발표한 CC9 Pro 모델은 샤오미 역사상 최초로 1억대 화소 카메라를 선보인 제품이다. 샤오미 Mi 10의 1억 800만 화소 카메라도 CC9 Pro를 개발하며 얻은 기술과 노하우가 바탕이 됐다. MIX 2s 시리즈부터 샤오미는 연구개발의 본격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2019년 5월 28일, 홍미 K20 시리즈 공개. 뜻밖에도 K20 라인업은 샤오미 플래그십 모델인 Mi 9를 압도했다. 샤오미 스마트폰 라인업 간 애매한 포지셔닝이 초래한 결과다. 하지만 홍미 브랜드는 1000위안대 스마트폰의 고정관념을 뒤엎으며 중고급기 시장 진입에 있어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다. 그 후 홍미가 2000~3000위안 가격대의 휴대폰도 선보이면서 프리미엄 시장 개척에 물꼬를 텄다.
2020년 2월 13일, 샤오미 Mi 10 시리즈 공개. 이 모델을 기점으로 샤오미는 저가 이미지 족쇄를 조금씩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프리미엄+가성비"라는 다소 상반되는 두 키워드를 결합하여 프리미엄 시장에 명함을 내밀었다.
2020년 3월 24일, 홍미 K30 Pro 공개. 홍미 K30은 샤오미 프리미엄 라인의 가격대 공백을 보완하여 라인업 간 경계를 더욱 확고히 했다. 그간 꾸준히 제기되던 "팀킬" 문제가 드디어 해소된 것이다. 저가 이미지 늪에서 벗어난 샤오미의 Mi 10은 결국 진정한 플래그쉽 모델로 자리 잡는다. 샤오미가 그토록 바라 왔던 프리미엄 시장에서 첫 승리를 거둔 것이다.
마치며
"스티브 잡스처럼, 세계 일류의 기업을 만들고 싶다"던 레이쥔은 창업 10년 만에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4위의 회사로 일궈냈다. 하지만 샤오미의 결승선은 아직 멀었다. 앞으로 가야 할 샤오미의 긴 여정 속에서도 꾸준한 "감동"을 주는 기업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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