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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전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기회와 노력, 해운이 모두 따라주었다는 내용을 분석한 말코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흥미롭게 봤다. 그 중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다룬 1997년 대한항공 비행기 추락사고를 다루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이유로 간접적으로 돌려말하는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우리의 언어습관이 1분1초의 판단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때에 위험요소가 된다고 주장했다. 아래 책에서 나온 예를 보자.


과장 - 날씨도 으스스하고 출출하네 (한 잔 하러가는 게 어때?)
회사원 -  한 잔 하시겠어요? (제가 술을 사겠습니다)
과장 - 괜찮아, 좀 참지 뭐 (그 말을 반복한다면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회사원 - 배고프실 텐데, 가시죠? (저는 접대할 의향이 있습니다)
과장 - 그럼 나갈까? (받아들이도록 하지)

위 대화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서로 상대방이 의중을 세삼하게 짚어가며 말하고 듣는다는 점에서 미묘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는 사람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능력일 때라야 제대로 이루어진다. 즉 양쪼 모두 의중을 떠볼만한 시간이 많을때 가능하다. 그는 이러한 점을 예로 들면서 대한항공 비행기 추락전 녹취댄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내용을 비교해가며 이러한 대화습관은 오히려 성과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콜롬비아 아비앙카 52편이 대한항공과 비슷하게 완곡어법을 사용함에 따라 일어난 사고를 예로 들면서 설명했는데, 대한항공과 콜럼비아의 공통점은 '권력 간격 지수 (Power Distance Index, PDI)가 높다는 점이었다. 권력관계지수란 특정문화가 위계 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내는데 이렇게 PDI가 높은 나라의 사람들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력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완곡어법을 잘 사용한다고 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PDI는 2위였다.

2000년, 대한항공은 델타 항공으로부터 데이비드 그린버그를 비행 담당자로 영입했는데 그는 '대한항공의 공용어는 영어다, 만약 대한항공의 조종사로 남고 싶다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그린버그는 항공 세계의 공통어는 영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인들이 문화적 유산에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보았다. 영어는 한국어의 복잡한 경어체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전환을 이끌어내는 열쇠로 작용했다.

이러한 완곡어법의 단점은 선수들끼리 대화하며 플레이 해야하는 축구에서도 나타나는데, 예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축구팀 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대 선수들이 훈련중에 아무 대화를 하지 않고, 심지어 밥을 먹을때에도 자기들 끼리 몇 개 그룹으로 나뉘는 것을 보고 히딩크 감독은 "나이가 많건 적건 무조건 반말을 한다"라는 파격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엄격한 위계질서에 익숙한 선수들에게 있어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 김남일 선수가 최고참 선배인 홍명보 선수에게 "명보야, 밥 먹자!"라는 한 마디에 웃음바다로 변했고, '평등했던' 대한민국 팀은 4강 신화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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